아빠의 논설

홍진에 뭍힌분네 이내생에 어떠한고

델리팝 2010. 9. 8. 09:19

 

상춘곡(常春曲)

 

속세에 사는 사람들아 나의 생활이 어떠한가?

옛 사람들의 풍류에 미칠까? 못 미칠까?

세상에 나 같은 남자들은 많겠지만,

자연에 묻혀 사는 이 지극한 즐거움을 모르는구나

푸른 시냇물 앞에 조그만 집을 지어 놓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우거진 속에 자연의 주인이 되었구나

 

엊그제 겨울이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복숭아꽃, 살구꽃은 저녁무렵 지는 해속에 피어있고

푸른 버드나무와 향기로운 풀은 가랑비 속에 푸르르다.

칼로 잘라냈는가? 붓으로 그려낸 것인가?

만물을 창조한 신의 노력이 모든 사물에 걸쳐 다채롭구나

 

수풀에서 우는 새는 봄의 기운을 못이겨

소리마다 아양을 떠는 구나

모든 만물이 하나이거늘, 흥겨운 것이 다르겠느냐?

사립문 주위를 걸어보고, 정자에 앉아도 보니

자유로이 거닐며 시를 읊조려 보지만, 산속의 날들은 고요하기만 한데

한가로운 가운데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나 혼자구나

 

이보시게 이웃들아 산수구경 가자구나

봄나들이는 오늘 하고 목욕은 내일 하세

아침에 나물을 캐고 낮에는 낚시하러 가세

 

이제 막 익은 술을 갈건으로 걸러 놓고 (갈건은 칡 섬유로 짠 베로 만든 두건)

꽃나무 가지 꺽어가며 수를 세어 먹으리라

화창한 바람이 잠시 불어 푸른 물을 건너오니

맑은 향기는 술잔에 들고, 떨어지는 꽃잎은 옷에 스며든다.

 

술독이 비였거든 나에게 아뢰어라

심부름 하는 아이를 시켜 술집에서 술을 가져다가

어른은 막대를 짚고 아이는 술을 메고

나지막이 읊조리며 천천히 걷다가 시냇가에 혼자 앉아

고운모래가 비치는 맑은 물에 잔을 씻어 술을 부어들고

맑은 물을 굽어보니 떠내려 오는 것이 복숭아 꽃이로다

무릉도원이 가깝도다. 저 곳이 바로 그곳인가?

 

소나무 사이로 진달래를 들고

산봉우리에 급하게 올라 구름 속에 앉아 보니

수많은 촌락이 곳곳에 벌여 있네

안개와 노을과 빛나는 햇살은 수를 놓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엊그제까지 검었던 들이 봄빛이 넉넉해 졌구나

 

공명도 날 꺼리고 부귀도 날 꺼리니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외에 어떠한 벗이 있을런가

간소한 음식과 누추한 거처에서도 허튼 생각은 아니 하네

아무튼, 한평생 잘 놀고 즐겁게 지내는 것이 이만한들 족하지 않겠는가?